통기타 레슨실에 들어오셔서 가방을 열자마자 자석에 이끌리듯 유리로 된 슬라이드 바를 꺼내 드는 수강생들이 참 많습니다. 유튜브에서 본 블루스 연주가 너무 멋져 보여서 일단 장비부터 구매하신 경우죠. 슬라이드 바를 손가락에 끼우고 프렛 위를 쓱 문지르면 그럴싸한 소리가 나긴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선생님, 소리가 왜 이렇게 쇠가 갈리는 것처럼 찢어지고 음정도 다 나갈까요?” 기타 넥에 바를 대고 아무리 문질러봐도 레코드에서 듣던 그런 끈적하고 묵직한 소리는 나지 않고, 깡통 긁는 소음만 난다는 호소를 매주 듣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슬라이드 주법이 바를 얼마나 정확한 위치에 갖다 대느냐 하는 왼손의 정교함에만 달렸다고 오해합니다. 그래서 줄을 꾹꾹 눌러 담금질을 하거나, 프렛 와이어 바로 위를 맞추려고 눈을 부릅뜨지요. 하지만 30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손을 잡아보며 내린 결론은 다릅니다. 슬라이드 주법의 핵심은 왼손이 아니라 기타의 줄 상태, 즉 **튜닝으로 연주하는** 것에 있습니다. 표준 개방현 조율 상태인 미-라-레-솔-시-미(E-A-D-G-B-E)를 그대로 둔 채 슬라이드 바를 올리면, 화음이 부딪혀서 불협화음이 쏟아지거나 한 줄만 짚어도 귓가를 찌르는 소음이 발생합니다. 표준 조율은 애초에 손가락 끝으로 각 줄을 독립적으로 누르도록 설계된 뼈대이기 때문입니다.
오픈 G 조율로 통기타의 속살을 바꾸기
제자 중 한 명이 야마하 에프지에 삼백(Yamaha FG-300) 모델을 들고 와서 로버트 존슨의 곡을 흉내 내다가 손목이 아프다며 울상을 지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장 페그를 풀고 **오픈 G 조율**로 바꿔보라고 권했습니다. 6번 줄부터 순서대로 레-솔-디-솔-시-레(D-G-D-G-B-D)로 줄을 낮추거나 높이는 방식입니다. 이 조율의 마법은 기타를 치지 않고 그냥 개방현을 뜯어도 완벽한 메이저 화음이 울려 퍼진다는 점에 있습니다. 바를 들고 5번 프렛이나 7번 프렛을 일직선으로 지그시 갖다 대기만 해도, 손가락을 복잡하게 움직일 필요 없이 완벽한 화음이 방안을 가득 채웁니다. 표준 조율에서 멱살을 잡히듯 억지로 소리를 쥐어짜던 슬라이드가, 조율을 바꾸는 순간 부드러운 버터처럼 미끄러지기 시작합니다. 줄을 퉁기는 오른손의 피킹 감각도 완전히 달라져야 합니다. 쿵짝거리는 리듬 속에서 불필요한 울림을 뮤트해 주는 감각을 이 새로운 조율 속에서 비로소 체득할 수 있습니다.
슬라이드 바의 무게와 손가락 궁합 맞추기
장비에 대한 또 다른 오해는 슬라이드 바가 무거울수록 깊고 진한 음색이 난다는 믿음입니다. 던롭(Dunlop) 사의 두툼한 브라스 재질이나 무거운 파이렉스 유리 바를 무작정 사서 새끼손가락에 끼우는 분들을 봅니다. 통기타는 일렉트릭 기타와 다릅니다. 일렉기타는 앰프의 게인과 출력이 서스테인을 받쳐주지만, 통기타는 오직 나무 울림과 줄의 장력으로만 승부해야 합니다. 줄의 높이가 낮은 일반적인 통기타 세팅에서 너무 무거운 바를 얹으면 줄이 지판에 닿아 찌르르하고 닿는 소리가 납니다. 십 년 넘게 제 레슨실을 지킨 통기타 마틴 디이십팔(Martin D-28)에 무거운 유리 바를 올렸다가 지판이 상할 뻔한 적도 있습니다. 통기타 슬라이드에는 묵직한 쇳덩이보다 가벼운 세라믹 재질이나 얇은 유리 재질의 바가 훨씬 다루기 쉽습니다. 손가락에 꽉 끼는 것보다는 살짝 여유가 있어서 관절을 움직이기 편한 사이즈를 골라야 오른손의 세밀한 강약 조절과 조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프렛이 아니라 쇠막대기로 음정을 가늠하는 법
많은 이들이 슬라이드 바를 프렛쇠 바로 위에 올려놓아야 정확한 음이 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눈으로 프렛을 확인하며 바를 쿵쾅거리듯 갖다 댑니다. 하지만 슬라이드 주법의 진정한 비밀은 프렛을 누르는 것이 아니라, **프렛 바로 위가 아니라 프렛 바와 프렛 바 사이의 정중앙, 즉 정확히 눈금이 가리키는 그 지점에 바를 띄우듯 얹는 것**에 있습니다. 표준 조율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오픈 조율로 튜닝을 마쳤다면, 이제 눈을 감고 소리에만 집중해 보셔야 합니다. 기타 줄을 누르는 게 아니라 줄 위에 가볍게 얹고 미끄러뜨릴 때 발생하는 미세한 마찰음을 즐기는 것이 이 주법의 본질입니다. 쇠막대기가 줄을 지나갈 때 손끝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진동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감각을 익히면 굳이 악보를 보지 않아도 귀로 음정을 찾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밤 연습실에 가시거든, 지금 바로 기타 튜너를 켜고 6번 줄부터 1번 줄까지 D-G-D-G-B-D로 낮추어 조율해 보십시오. 그리고 지갑 속에 처박아 두거나 구석에 모서리가 깨진 채 방치된 슬라이드 바를 집어 들고 12번 프렛 위를 가볍게 스윽 긁어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